2026년 상반기, 박지훈이라는 이름이 영화관과 OTT를 동시에 점령하고 있다. 천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2026)의 주연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상을 받자마자, tvN 취사병 전설이 되다(2026)로 또 한 번 화제성 1위에 올랐다. 워너원 출신 아이돌이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지, 그 연기 커리어를 시간순으로 정리해본다.
아역배우에서 아이돌까지
박지훈은 2006년 드라마 주몽에서 소금장수 아들 역으로 데뷔한 아역배우 출신이다. 왕과 나(2007), 일지매(2008)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에서 마이클 역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17년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출연해 최종 2위로 워너원 멤버가 됐고, “내 마음속에 저장”이라는 유행어와 비주얼 센터 포지션으로 1년 5개월간 케이팝 신을 누볐다. 워너원 해체 이후 소속사 마루기획으로 돌아와 연기와 솔로 활동을 병행했다.
연기로 무게중심을 옮긴 초기작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2019)에서 고영수 역을 맡으며 연기 활동을 본격화했고, 카카오TV 웹드라마 연애혁명(2020)에서는 원작 웹툰의 공주영을 그대로 옮겨놨다는 평을 받으며 주연을 맡았다. 본인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과장된 코믹 요소를 부담스럽지 않게 자기 스타일로 소화했다는 호평이 따랐다. 2021년에는 KBS2 멀리서 보면 푸른 봄으로 첫 지상파 드라마 주연을 꿰찼고, 2022년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플락의 신부에 미스터리한 남자 역으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까지는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인식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였다.
약한영웅 Class 1, 진짜 터닝포인트

그 인식을 깬 작품이 2022년 Wavve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 1이다. 학교폭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모범생 연시은 역을 맡아, 무표정 속에 서늘한 독기를 담은 절제된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낮은 저음과 차분한 딕션, 민낯에 가까운 메이크업까지 캐릭터에 맞춰 디테일을 쌓았고, 이 작품으로 청룡시리즈어워즈와 코리아드라마어워즈에서 남자 신인상을 받았다. 공개 직후 Wavve 신규 유료 가입자를 견인하며 역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로 등극했고, 이후 해외 플랫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글로벌 팬덤을 넓혔다. 업계에서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약한영웅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평가한다. 본인도 이 작품을 인생작으로 꼽는다.
환상연가,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하다
2024년 KBS2 환상연가에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1인 2역에 도전했다. 태자 사조현과 그의 두 번째 인격 악희를 오가는 역할로, 한 인격이 잠들면 다른 인격이 깨어나는 설정 속에서 완전히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사조현은 차분한 사극 톤으로, 악희는 거칠고 현대적인 말투로 구분해 같은 배우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분위기를 달리했다는 평을 받았다. 약한영웅이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라면, 환상연가는 진폭이 큰 연기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다.
왕과 사는 남자, 천만 배우가 되다
2025년 약한영웅 Class 2로 연시은 역을 다시 연기한 뒤, 2026년 2월 첫 상업 영화 주연작 왕과 사는 남자에 캐스팅됐다. 폐위된 어린 왕 단종 이홍위 역으로, 대사보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비극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이미 결말이 알려진 역사적 비극임에도 나약한 비운의 왕이 아니라 내면의 강인함을 지닌 단종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영화는 3월 6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개봉작 중 34번째 천만 영화가 됐고, 이후 1628만 관객까지 늘어나며 역대 관객수 2위,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박지훈은 이 작품으로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과 남자 신인연기상을 동시에 받았고, 디렉터스컷 어워즈에서도 배우상을 받으며 “단종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취사병 전설이 되다, 현재진행형 흥행
왕과 사는 남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2026년 5월 tvN 취사병 전설이 되다로 곧바로 다음 작품을 들고 나왔다. 부친상을 당한 뒤 깊은 우울감에 빠진 S급 관심병사 강성재가 전설의 취사병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로, 게임 판타지 요소가 결합된 군대물이라는 독특한 설정 덕에 방영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첫 방송부터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드라마 역사상 이례적인 성과를 냈고, 박지훈은 같은 주 출연자 화제성 1위에도 올라 영화와 드라마 두 매체에서 동시에 화제성을 입증한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었다. 서툰 신병의 위태로운 내면 연기부터 점차 각성하는 과정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본인이 여러 인터뷰에서 내년 해병대 입대 의사를 밝혀온 만큼, 이 상승세가 입대 전까지 이어질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가 지금 가장 큰 관심사로 남아 있다.
박지훈의 상승세를 한 작품의 운으로 보기는 어렵다. 약한영웅에서 절제된 감정 연기로 연기력 자체를 증명했고, 환상연가에서 1인 2역으로 연기 폭을 넓혔고,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비극을 전달하는 영화적 연기까지 보여줬다. 그 위에 취사병 전설이 되다처럼 코믹하고 가벼운 톤의 캐릭터까지 소화하면서, 한 가지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배우라는 인상을 쌓았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출발점이 오히려 약점에서 강점으로 바뀐 셈인데, 아역배우 시절부터 쌓아온 기본기가 그 변신을 뒷받침했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