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원 히트 원더’ 감독 10명

가수에게만 원 히트 원더가 있는 게 아니다. 영화감독 중에도 평생 한 작품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비슷한 임팩트를 다시 만들어내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흥행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후속작이 흥행에 실패한 경우, 평단의 인정을 한 번 받은 뒤로 신작 소식이 끊긴 경우까지 패턴은 다양하다. 한국 영화 산업이 흥행 결과에 워낙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구조라, 한 번의 실패나 공백이 그대로 다음 기회의 부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열 명을 모아봤다.

1. 이정범 – 아저씨(2010)

원빈을 톱스타로 만든 액션 영화로 흥행과 평가 모두 잡았다. “사랑이 아니라 호의였다”는 대사까지 오랫동안 회자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후속작 우는 남자(2014)와 악질경찰(2019)이 잇따라 처절하게 흥행에 실패했고, 세월호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이 오히려 비판의 명분이 되며 그 이후로는 필모그래피 자체가 흐지부지해졌다.

2. 이상근 – 엑시트(2019)

데뷔작으로 942만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최고 흥행작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차기작 악마가 이사왔다가 6년 만인 2025년에야 나왔고, 시사회 직후부터 평이 갈렸다. 정작 본인은 데뷔작 이전에 써뒀던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 완성했다고 밝혔는데, 그만큼 데뷔작의 그림자가 워낙 컸던 탓에 차기작 부담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3. 곽경택 – 친구(2001)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사를 남긴 영화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흥행작이 됐다. 부산 사투리와 학창 시절 정서를 결합한 연출이 전국적인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후 똥개, 사랑, 통증 등 꾸준히 작품을 냈고 2013년에는 속편 친구2까지 만들었지만, 첫 작품의 문화적 위상에는 끝내 다다르지 못했다.

4. 추창민 –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1232만 관객을 모아 그해 한국 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이병헌의 1인 2역 연기와 탄탄한 사극 연출이 맞물린 결과였는데, 이후 내놓은 작품들은 이 정도의 화제성을 다시 만들어내지 못했다.

5. 윤성현 – 파수꾼(2011)

저예산 독립영화로 시작해 그해 신인감독상을 휩쓸며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청춘들의 관계와 폭력을 다룬 섬세한 연출이 많은 영화인들 사이에서 인생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그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이후 장편 연출 신작 소식이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다. 넷플릭스 초창기에 나온 사냥의 시간에서 탈조선급 시퀀스를 선보였고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나 쿠팡 오리지널에서 첫 시리즈 연출작 뉴토피아에서 다시 평이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6. 양익준 – 똥파리(2009)

각본, 감독, 주연을 모두 맡아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굴레를 거칠고 솔직하게 그려내며 한국 독립영화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배우로는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했지만, 감독으로서 똥파리에 맞먹는 후속작을 내놓지는 못했다.

7. 이용주 – 건축학개론(2012)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려 막대한 문화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속 노래와 대사가 한동안 일상 대화에 스며들 정도로 사회 전반에 퍼졌던 작품이다. 명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과 인질(2021)을 잇따라 냈지만, 건축학개론이 남긴 사회적 화제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명탐정 홍길동을 좋아해서 한국의 씬시티라고 친구들에게 추천했다가 눈총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8. 김초희 –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영화 일을 하던 사람의 현실을 자전적으로 풀어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영화 일을 그만둘 위기에 놓인 한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담아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특히 사랑받은 작품인데, 그 이후 장편 신작 소식은 뜸한 편이다.

9. 심형래 – 디워(2007)

원작 자체에 대한 평가 논란은 컸지만 8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만큼은 확실하게 잡은 영화였다. 미국 진출을 목표로 했던 야심도 화제성에 한몫했다. 그러나 후속작 라스트 갓파더(2011)가 국내외에서 모두 외면받으며 사실상 감독으로서의 활동이 멈췄다.

10. 강형철 – 써니(2011)

복고 정서와 음악을 절묘하게 엮어 740만 관객을 모은 메가히트작이다. 7명의 여고 동창생이 중년이 되어 다시 모이는 이야기로 또래 관객들의 향수를 정확히 짚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타짜: 신의 손(2014), 마마(2015) 등을 연출했지만, 써니가 만들어낸 만큼의 화제성과 흥행을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다.

이 열 명을 묶어보면 두 갈래로 나뉜다. 흥행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후속작이 흥행에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지 못한 경우(이정범, 심형래)와, 흥행이나 평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후속작 자체가 뜸해진 경우(윤성현, 양익준, 김초희)다. 전자는 대중의 기대가 너무 높아져서 생기는 부담이 크고, 후자는 첫 작품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 같은 강도의 다음 작품을 만들기 어려워진 경우로 보인다. 곽경택이나 강형철, 추창민, 이용주처럼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가는 중간 지대의 감독들도 있는데, 이들은 완전히 멈춘 건 아니지만 대표작 하나의 그림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쪽이든 데뷔작이나 대표작 하나가 감독의 평생 커리어를 정의해버리는 한국 영화계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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