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가 만드는 해리포터 리부트 드라마가 첫 티저를 공개하자마자 캐스팅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핵심은 스네이프 교수 역을 맡은 파파 에시에두가 흑인 배우라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백인 캐릭터를 인종만 바꿔서 캐스팅하는 건 원작 파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건 그냥 인종차별일 뿐”이라고 한다. 둘 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과장돼 있다. 양쪽 주장을 정리해보고, 비슷한 전례인 디즈니 인어공주(2023) 캐스팅 논란과 비교해서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 짚어본다. 같은 종류의 논란이 작품마다 반복되는데도 매번 결론 없이 소모전으로 끝나는 이유를,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좀 더 또렷하게 알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었나
HBO판 해리포터는 2026년 크리스마스에 첫 시즌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공개된다. 도미닉 맥로린이 해리, 아라벨라 스탠턴이 헤르미온느, 알라스테어 스타우트가 론을 맡았고, 존 리쏘우가 덤블도어, 파파 에시에두가 스네이프, 재닛 맥티어가 맥고나걸 역을 맡았다. 이 중 가장 큰 반발을 산 건 스네이프 캐스팅이다. 에시에두는 캐스팅 발표 직후부터 인종차별적 살해 협박을 받았고, HBO는 그를 위한 보안팀을 따로 구성했다.
원작파괴라는 쪽의 주장
이쪽 주장은 단순히 “백인 캐릭터니까 백인이 해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첫째, 원작 소설은 스네이프를 창백한 피부, 매부리코, 기름진 검은 머리로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외형 묘사가 명확한 캐릭터를 바꾸면 원작 이미지와 거리가 생긴다는 게 1차 근거다. 둘째는 더 구체적인 서사 논리 문제다. 스네이프는 학창 시절 제임스 포터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스네이프가 흑인이라면 이 괴롭힘에 인종차별적 함의가 생기고, 원작에 없던 설정이 끼어든다는 우려다. 이건 단순 외모 불일치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비판이다. 다만 이 우려가 실제로 드라마에서 어떻게 다뤄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인종차별이라는 쪽의 주장
반대쪽은 두 가지를 근거로 든다. 첫째, 원작자 J.K. 롤링이 이미 2016년 연극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서 흑인 배우 노마 두메즈웨니가 헤르미온느를 맡는 데 직접 동의했고, 당시 “헤르미온느는 갈색 눈, 곱슬머리, 똑똑하다는 것만 명시됐다. 피부색은 언급된 적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즉 모든 캐릭터의 인종이 항상 명확하게 못 박혀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살해 협박처럼 캐스팅에 대한 반발이 실제 비평을 넘어 인종 그 자체를 향한 적대로 번진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연기력보다 피부색이 먼저 문제가 됐다”는 지적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인어공주(2023)와 비교하면
디즈니의 실사 인어공주 캐스팅 때도 같은 구도가 반복됐다. 할리 베일리가 에리얼로 캐스팅되자 “안데르센 원작과 애니메이션 모두에서 에리얼은 백인으로 그려졌다”는 반발이 나왔고, 동시에 “에리얼은 인어, 즉 실존하지 않는 존재라 인종적 정확성을 따질 대상이 아니다”는 반박이 맞섰다. 차이점은 분명하다. 에리얼은 외형 묘사가 노래와 색채(빨간 머리, 초록 비늘) 위주였고 서사 논리상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반면 스네이프는 외형 묘사가 구체적이고, 제임스 포터와의 관계라는 서사 구조까지 걸려 있다. 그래서 인어공주 쪽은 “취향과 추억의 문제”에 가까웠고, 스네이프 쪽은 “설정 논리”라는 더 구체적인 반박 근거를 갖췄다고 정리할 수 있다.
헤르미온느는 왜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나
흥미로운 건 헤르미온느 역의 아라벨라 스탠턴은 스네이프만큼 큰 논란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탠턴은 혼혈 배경의 배우이고, 이미 해리포터 신판 오디오북에서 헤르미온느 목소리를 맡은 경력도 있다. 앞서 언급한 2016년 연극 전례와 롤링 본인의 발언 덕분에 “헤르미온느 인종은 원래도 고정돼 있지 않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었다. 반면 스네이프는 영화에서 앨런 릭먼이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데다, 외형 묘사와 서사 구조가 더 구체적이라 같은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같은 작품, 같은 제작진의 캐스팅인데도 캐릭터별로 반응의 크기가 다르게 나타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별개로 봐야 할 논란도 있다
이 드라마를 둘러싼 반발에는 캐스팅과 무관한 축도 섞여 있다. J.K. 롤링의 트랜스젠더 관련 발언에 반발해 시리즈 자체를 보지 않겠다는 팬들도 상당수다. 덤블도어 역의 존 리쏘우는 이 논란 때문에 출연을 고민했다가, “원작은 분명히 불관용과 편견에 반대하는 편”이라며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캐스팅 논란과 작가 개인의 발언 논란은 발생 원인이 다른 별개의 문제라서, 두 논쟁을 섞어서 “이 드라마가 통째로 논란작”이라고 묶는 건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두 진영의 주장 모두 일부는 합리적이고 일부는 과열돼 있다. 외형과 서사 논리에 대한 우려는 비평으로서 성립하지만, 그 우려가 살해 협박으로 번지는 순간 그건 비평이 아니라 그대로 차별이다. 반대로 모든 반대 의견을 인종차별로 단정하는 것도 정당한 작품 비평의 여지를 지워버린다.
인어공주 사례와 비교해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캐스팅 논란이 합리적인 비평으로 남는지, 아니면 차별로 번지는지를 가르는 기준은 “어떤 캐릭터인가”가 아니라 “반발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는가”에 있다. 트레일러 아래 댓글로 아쉬움을 남기는 것과, 배우 개인에게 살해 협박을 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행동이다. 이 드라마가 실제로 설정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는 2026년 크리스마스 공개 이후에야 판단할 수 있고, 그 판단도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와 배우 개인을 향한 공격은 분리해서 이뤄지는 게 맞다.